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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가 몇 년 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2022년 1년은 어떤 한 해를 보내셨습니까? 저는 직장에서 많은 변화가 있어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코로나 여파가 여전히 지속되어 많이 힘든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한다면 세계적으로 코로나 대유행을 점차 극복하면서 여행도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보다 보니 저도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면 좋을지 생각을 해보니 코로나 이전에 다녀왔던 나가사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나가사키를 여행하게 되었던 계기는 아는 지인이 한국 여행 때 신세를 많이 졌다고 보답하고 싶다고 연락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나가사키는 아직 여행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관심이 있기는 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여행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한도전에서 군함도와 관련된 방송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과 마침 친구가 군함도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교롭게 이런 일들이 발생하였고 이것은 운명이라 생각하여 평소 나가사키를 가고 싶어 했던 친구와 여행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 안에는 군함도는 무조건 포함하였고 3박 4일간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으면 다음날 방문하더라도 꼭 보고 온다는 다짐으로 군함도로 향했습니다.

    군함도(하시마섬)
    군함도(하시마섬)

    1. 군함도(하시마섬) 소개

    일본 나가사키현 소속으로 분류되어 있는 군함도(하시마섬)은 나가사키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군함도라고 불리는 이유는 섬을 멀리서 보았을 때 군함처럼 생겼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군함도로 알려진 이 섬의 정확한 이름은 '하시마섬'입니다. 이 섬의 크기는 남북으로 500미터가 조금 안 되고 동서로는 200미터 보다 조금 작습니다.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섬은 처음에는 정말 작은 섬이었으나 채탄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매립과 함께 확장공사를 동시에 진행했고 반복적인 공사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군함도 주변에는 일본 규슈에 위치한 탄전이 위치하고 있어 채탄을 오랜 시간 지속했으나 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채탄을 하기 위해 만든 길의 경사가 가파른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채탄하기 위해 내려가고 올라가는데 수많은 어려움이 발생했고 일본 사람들을 동원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본은 전쟁 포로, 조선인 징용, 외국인 등을 데려와 채탄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하는 조선인 및 외국인들은 강제로 동원되어 최악의 상황에서 지속해서 일을 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희생 역시 계속되었습니다. 패망 이후에도 이 섬에서의 채탄은 지속되었고 1960년대까지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면서 광업도시로써의 역할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폐광되면서 사람은 점차 군함도를 떠났고 지금의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2. 군함도의 일본 대기업의 관계

    군함도(하시마섬)은 일본 기업 미쓰비시의 소유였습니다. 1900년대 초반과 중반까지 일본의 전쟁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전쟁으로 인해 석탄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수요를 채우기 위해 군함도의 소유주였던 미쓰비시는 노동력의 확보가 중요했고 계속해서 인원을 동원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930년대에는 넘쳐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300명이 넘는 인원이 군함도 탄광에서 종사했다고 합니다. 이후 에도 수요는 계속 늘어나자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법을 시행합니다. 일본 국내에서는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필요한 자원들을 식민지 조선에서 충당하기 위해 1945년 패전 시까지 지속적으로 징용하여 군함도에서 일을 시켰습니다. 지옥에서의 노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정도의 작은 갱구는 깊은 곳은 깊이가 1,000m에 달했고 갱구에 기어들어가 하루 12시간 이상 채탄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안전장치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탄광에서는 사고가 자주 발생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으며, 열악한 숙소에서는 바닷물의 파도가 높이 치면 숙소가 파도에 휩쓸리는 경우도 상당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한 조선인들은 탈출을 시도했으나 주변의 거친 파도와 바람으로 인해 대부분이 익사했고 바다를 건너더라도 일본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3. 군함도 세계 유산 등재

    군함도에서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는 장소는 정해져 있습니다. 일본 정부에서 정한 루트에 따라 빨간 재킷을 입은 가이드와 함께 관광지를 이동하면서 설명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가이드는 군함도의 우수성과 일본 정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가 조선인, 중국인, 동남아 사람들을 착취한 사실에 대해서는 절대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설명은 하지 않고 단순 일본어로 외국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로 설명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조선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을 인간이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한 사실이 여러 자료로 증명이 되었음에도 가이드는 "이 섬에는 없는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풍요롭고 즐겁게 살았다"는 내용으로 계속해서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부유하게 살았던 생활을 증명하는 건물들과 위치들에 대해서만 계속해서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당시 대사의 공식 발언을 통해 강제성을 인정하였으며, 강제 노동 역사를 기록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믿고 있었지만 역시 일본은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강제성을 부정하고 있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은 미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일본이 저지른 만행들에 대해 증명하고 인정하고 사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기면서 한 번 더 여행 계획을 세우려 합니다.

    4. 결론

    하시마로 알려진 군함도를 방문하기 위해 배에 올랐을 때 뭉클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군함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더 아프면서도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군함도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는 마치 과거에 제가 온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버려진 고층의 주거 시설 등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가득 있으며, 조선인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높은 외벽을 세웠다고 합니다. 조선인 강제 징용자부터 일본인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군함도는 가혹한 현실의 전형이었으며, 늘어나는 채굴량에 비해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고 환경은 열악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아픈 역사를 너무 당당하게 설명하는 일본인 가이드들 및 웃어 넘기는 일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남아있는 역사적 장소 방문을 통해 느끼고 배운 점들을 지금과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하시마섬 방문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맛집이나 유명 관광지 투어도 좋지만 한국 사람으로 당연히 알아야 하는 역사적 장소를 방문하여 희생된 분들의 넋을 기리고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지 한 번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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